아침 일찍 시장에 가는 길
마을버스 정류장에 가브리엘라가 서 있다.
어디 가세요?
소고기 사러
오늘 엠마우스 선교단에 마지막으로 가는 날이거든
미사 끝나고 밥해 먹거든
기도해야 돼, 이야기 잘 되게
예, 샘
불고기거리를 한우로 사고, 파도 사고, 버섯도 사고
바삐 돌아와 양념을 만들고 고기를 재서 아이스박스에 넣어 갔다.
신부님은 몸이 안 좋아 보이신다.
어제는 링거를 맞으셨단다.
글로벌 교육센터 공사 마무리를 하시느라 무리하신 탓이다.
미사가 끝나고 식사가 끝나고
축일을 맞은 형제님을 위해 케익도 자르고
커피를 마시며 깊은 친교를 나누고...
늘 그랬던 시간이지만
내게는 아주 특별한 순간들이었다.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
신부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머리 속으로 여러 번 생각했지만
실제로 이 말을 하는 데에는 또 결심과 용기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선교단을 나가야 될 거 같애요
이 말을 하고 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다행히 안 들킬 만큼
신부님은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내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주셨다.
그렇지만 교회 안의 인간관계에서 그렇게 무 자르듯이 하는 게 아니라고
활동회원은 아니더라도 명예회원으로 있으라고 하셨다.
다시 시간이 허락하면 활동회원으로 돌아오라고 하셨다.
속상하지도 서운하지도 않을 만큼
딱 좋은 해결방법이다.
머리 속에서, 가슴 속에서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덜어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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