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바람은 불고싶은 데로 분다

착한초보 2013. 4. 19. 18:43

"제가 왜 이걸 해야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본당에 그렇게 사람이 없나요?"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맡지 않을 수 있을까 하여 호소했지만 아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첫영성체 부모교육 강의를 맡게 되었고 참고도서를 읽으며 강의록을 쓰고 PPT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신학원 다닐 때 어떤 교수님이 신학원 졸업하면 다 아는 줄 알고 아무거나 다 시키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을 때 설마 했었는데 진짜였다.

 

신학원 졸업과 동시에 교리교사 자격증과 선교사 자격증을 손에 받아들었지만 사실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신학원 시절의 벅찬 추억들만 가슴 가득 담고있을 뿐이었다. 처음 입학하고 나서 제일 좋았던 건 다시 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동안 본당에서 주일학교 교사, 교감, 레지오 단원, 청소년분과장까지 여러가지 활동을 하면서 감사했던 일도 많았지만, 상처받은 적도 많았다. 나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작은 일을 크게 만든 일도 있었다. 한 동안 교회를 떠났던 아픈 시간도 있었다. 곰곰이 나 자신을 돌아보니, 그 모든 것이 나의 신앙이 부족해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상 신학원 입학 지원서를 준비하면서

본당신부님 추천서가 필요해 부탁을 드렸다.

 

신부님은 알았다고 하시고는

그런데 거기 왜 가죠 하고 물으셨다.

 

여러 사람들이 추천을 하네요 라고 대답하고는

그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아있기에

계속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왜 가려고 하지

 

어떤 이는

편하게 하고싶은 거나 하면서 살지 뭐하러 골치아픈 공부는 하려 드냐고 한다.

 

어떤 분은

돈있고 시간있는 아줌마들 몰려다니는데 뭐하러 가냐고 차라리 신학교에 들어가라고 했다.

 

또 어떤 분은 열심히 해서 교회의 엘리트가 되라고 격려한다.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공부하는게 좋고 하고싶은 공부가 신학이다.

나도 돈있고 시간있는 아줌마 맞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몰려다니는게 좋지 신학교에서 왕따로 지내기 싫다.

엘리트가 되면 좋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그걸로는 설득이 안되기에 계속계속 생각해 보았다.

 

어제 미사에서 떠오른 답은

아, 나는 내 마음의 밭에 가는구나

아주 작은 일에도 흔들리는 얕은 신앙을 가진 나에겐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땅이 필요하구나

그래서 호미를 들고 밭을 갈게 하시려는 거구나

 

그 밭에 있는

많은 잡초를 뽑고 많은 돌을 골라내

좋은 땅이 되고싶다.

 

 

그 자매(Y)와 신학원을 함께 다니게 되었을 때, 내심 걱정이 앞섰다.

같은 본당이지만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 불편할 거 같았고

오가는 길에 차 안에서 조용히 기도하려고 계획했던 것이 틀어졌기 때문이었다.


Y는 목소리도 크고 무척이나 튀는 편이었고

남의 눈에 드러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처음에는 분심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매일 거의 하루 종일 함께 지내면서 차츰 Y의 내면을 알게 되었다.

Y는 정말 성실하고 남을 많이 배려하고 남모르게 선행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상처도 많고 그만큼 하느님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하느님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였다.

동키호테와 햄릿처럼 정반대의 성격인 우리는 이제 환상의 커플이 되었다.

나는 좋은 계획은 많으면서도 실천을 잘 못하는 반면,

Y는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행동으로 옮긴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함께 한다면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해주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Y는 나의 장점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가졌으며,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중립을 지킨다는 것을 꼽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과도 일치했고, 앞으로 심리상담 일을 하면서 봉사하고 싶다는 나의 계획에 자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Y에게 마음 아픈 일이 생겼다.

한 자매에게 Y가 좋은 마음으로 했던 말과 행동이 그 자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서로 상처를 주게 되었다.

Y는 그 일로 많이 아파하고 그 후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 일을 처음부터 지켜보면서 10여년 전에 내가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또다른 동키호테였던 A자매가 내게 했던 말과 행동이 나에게는 간섭과 시샘으로 느껴졌고 나는 A를 멀리하게 되었었다.

 

그런데 이제 생각해보니 Y가 그랬듯이 A도 좋은 마음에서 그런 말과 행동을 한 것을 내가 오해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받아들일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지 않았기에 마음을 열지 못했고

마치 개와 고양이의 언어처럼 상대에게 오해와 상처를 주게 된 것 같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Y에게 들려주면서 마음 속에서 A와 화해를 하는 것을 경험했다.


신학원에서 Y와 한해 동안 함께 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오가는 길에 혼자 기도하리라고 계획했었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달랐다.

하느님은 Y를 통해서 나와 반대의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없애 주셨다.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해주셨고 나의 한계를 넓혀주셨다.

나는 하상신학원을 마치고 나서 심리상담을 공부하고 상담봉사를 하리라고 계획하고 있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다를지도 모른다.

다음번엔 또 어떤 좋은 것을 주실까 기대하면서 그저 하느님의 뜻에 나를 온전히 맡길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밤에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갔다가

아래층에 사는 스콜라스티카를 만났다.

 

선생님, 교리 왜 안 해요, 언제 시작해요?

응, 3월에 개학이야~

 

대답해놓고는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졌다.

그런데 다른 선생님이랑 할거야...

 

구역장님은 약속한 대로, 구역교사 자리를 내놓는 것을 허락하셨다.

하상신학원에 복학하면 시간이 없으리라는 것을 잘 이해해주셨다.

 

구역장님은 종종 집을 교리장소로 제공하시기도 했고

마지막 날엔 아이들을 위해 작은 파티를 열어주셨다.

아녜스는 타고난 교사같다고 자주 그러신다.

처음엔 교사 오래 시킬려고 하는 말이겠거니 했는데

그만 두고 나서도 그러시는걸 보니 진심인거 같다.

 

예전에 내 모습을 보았더라면 그분이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교사노릇을 하냐고 탄식하셨을 것이다.

 

교사용 교재에 나와 있는 내용만 겨우 외워서 교리를 하고 나면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아이들이 떠들고 난리쳐도 속수무책이었다.

성경에 나와있는 십계명은 교리책이랑 왜 다르냐고 어떤 똘망똘망한 아이가 질문했을 때 얼마나 당황했던가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면 교리 마치는 종소리만이 구원이었다.

햇병아리 시절, 교리실 문에 씌어있는 강완숙 또는 효임골롬바란 이름이 교리교사 이름인 줄 알고 누군가에게 질문했던 굴욕도 있었다.

 

작년 한 해 동안의 구역교사 생활은 달랐다.

아이들끼리의 나눔 후에 선생님과 함께 라는 순서가 되면

아이들에게 말해 줄 것이 너무 많았고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교사용 교재에 나와있는 것 뿐이 아니라

내가 아는 하느님을 말해 줄 수 있었고, 내가 만난 예수님을 말해 줄 수 있었다.

 

행복했다.

 

사실 고3엄마라는 핑게로 재미없는 구역교사 같은거 안 하고 싶었었다.

교사끼리의 유대감도 없고, 교육도 없고, 회식도 없다.

 

그렇지만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 했더니 하느님은 더 좋은 것을 주셨다.

 

행복한 교리시간, 그것은 하느님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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