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도

착한초보 2009. 9. 18. 09:07

아침에 눈을 뜨니 앗, 벌써 여섯 시가 다 돼 간다.

얼른 팥을 삶고 멸치 다시를 내고 냉동실에서 연어 꺼내놓고

오이 돌려깎기 해서 채썰고 파프리카랑 배도 채썬다.

찰밥이 뜸이 드는 동안 미역국 간 보고 연어 채소롤 한 접시 말아놓고

밥이랑 국을 푸고, 반찬들 차려놓고

케잌도 준비해놓고 얼릉 선물 포장해놓고 시계를 보니 여섯시 반

식구들을 깨워 딸래미 생일축하를 했다.

 

방금 다린 따끈한 셔츠랑 교복 입혀서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 데려다주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돌린다.

휴...오늘도 무사히 벼락치기에 성공했다.

 

매번 대사를 앞두고는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놓지만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스위치가 켜진다.

 

그래도 사람들 불러 밥먹는 건 좋아하는지라

안해도 될 일을 한번씩 벌이는데

당일 아침이 돼서야 비로소 시동이 걸리니

하루 종일 미친 듯이 청소며 장보기, 음식준비를 해치워도

매번 초읽기를 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제일 곤란한  경우가 약속시간보다 손님이 빨리 도착할 때이다.

화장하고 예쁜 옷 갈아입는게 제일 마지막 순서이니

추리닝 바람에 벌건 얼굴로 땀 뻘뻘 흘리며

그 동안 이미지 관리 해온거 뽀롱나게 된다.

 

나의 벼락치기 경력은

학생시절, 직장생활을 거쳐 전업주부생활을 통틀어 족히 3, 40년은 되나 보다.

그래선지 실력이 점점 늘어

이젠 말 그대로 빛의 속도에 도달하게 되었다.

 

딸들도 빛의 자녀라 그런지

뭐든 미리 해놓는 법이 없고 그렇다고 안 하는 것은 없으니

야단칠 수도 없구....

 

나중에 외손자가 지 엄마한테

엄마, 번갯불에 콩구워먹는게 무슨 말이예요 그러면

응, 외할머니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야 그럴텐데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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