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제단을 쌓다

착한초보 2010. 4. 16. 20:08

 

나 있잖아 요즘 스케쥴러 사용한다.

오늘 집에 오는 길에 자랑했더니 운전하던 유스티나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언니, 많이 발전했다아~

그래, 나 진짜 많이 변한 거야

 

지난 부활절엔 전혀 부활하지 못햇다.

학교를 나흘 쉬는 동안 해야할 숙제가 네 개나 되었기 때문이다.

책도 두권이나 읽고 독후감을 두개나 써야했다.

사실 원래 예정되어있던 숙제였지만 느긋하게 미루어왔던 터였다.

닥쳐서야 밤새워가며 해내느라 그야말로 몸살이 났다.

 

성삼일 전례에 온전히 참여하지도 못하고

부활 성야 미사도 별다른 감동이 없이 참례하고 나서 이건 아니지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가, 독서가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이

그것도 내 게으름 때문이라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이참에 나의 고질병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딸아이한테서 스케쥴러를 한 권 얻었다.

날짜별로 해야할 공부를 기록하고

책도 매일 읽을 분량을 정하고 동그라미를 치기로 했다. 

 

어젯밤엔 다음주 목요일에 내는 신약입문 숙제를 마쳤다.

화요일에 시험보는 상제상서 외워쓰기도 거의 다 됐다.

그동안의 내 행실에 비추어 보면 이건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유스티나가 말했다.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다 다르지만 각자에게 꼭 필요한 걸 주실건가 봐

그래 맞아...

하품이나 하며 대충대충 게으르게 살아도 큰 탈은 없겠지만

바쁜생활 때문에 부지런함을 얻게 된다면 얼마나 큰 은총인가

 

보물도 아닌 것을 여태 무겁게 끌고 다닌 돌을 내놓고

첫번째 제단을 쌓는다.

그 돌에는 '게으름'이라고 씌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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