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흑조

착한초보 2011. 3. 19. 15:28

연극이 끝난 후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는 가운데 배우들이 퇴장하고 나서 주연배우가 다시 등장했다.

그리고 유명한 신부님이 나타나셨다.

관객들이 기립한 가운데 신부님은 말씀을 이어가셨다.

 

일찍 집에 돌아와야 했기에 끝까지 듣지 못하고 극장을 나오는데 홀 저쪽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

언젠가 피정에서 만난 자매님이다.

그분도 다섯시까지 어딘가로 가야해서 일찍 나오셨는데

같이 온 자매님이 목도리를 두고 나와, 가지러 들어가면 안되겠냐고 관계자에게 사정을 하셨다.

그 사람은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중이라 절대로 안된다고 한다.

 

잠시 소란이 있은 후 자매님은 목도리를 가지고 나왔고

우리는 함께 지하철을 타러 갔다.

자매님 얼굴을 다시 보니 역시 그 피정에서 만났던 분으로, 어떤 유명한 분의 어머니시다.

그분들도 용케 나를 알아보셨다.

우리는 다음 피정때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고 헤어졌다.

 

버스에 앉아 눈을 감고 극중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이

마음으로 보아야 보인다고 했던 말씀을 떠올렸다.

 

여기까지는 대외용이다.

실은 어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고 집 밖에서 그렇게 소리를 질러보긴 처음이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

 

기립한 채로 신부님의 말씀을 들어야했을 때부터 슬슬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발성연습부터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연기력이 부족한 배우와

끄는 걸 잊어버렸나 싶은, 몰입을 방해하는 과한 음악을 참고 있었던 터라 더했을 것이다.

두시간이 넘는 긴 연극 후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강론 또는 설교를 들어야하는 것은 내게는 고역이었다.

 

아무리 급한 사정이 있어도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중이라 들어갈 수 없다니,

낮은 데로 내려가라는, 가난한 이와 함께 하라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을 가득 담은 가슴을

한순간에 뒤집어엎는 소리가 아닌가

그 자매님이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있어도 그랬을 것인가

그 자매님이 그 유명한 분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았어도 그랬을 것인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