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열등감, 우월감, 겸손

착한초보 2010. 11. 2. 21:24

오늘 강론은 바로 문답식입니다.

 

1. 오늘 예수님께서 머무셨던 동네의 이름은??

① 예비코 ② 예절코 ③ 예리코 ④ 예술코

 

예리코 하면 생각나는 성서 인물이 또 있습니다. 바로 예리코의 소경입니다. 그의 명언은 이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자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였고, 예수님은 그 때 뒤를 돌아다 보시며 그의 소원대로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리코는 인간의 노력과 예수님의 자비가 만나는 장소입니다. 오늘 복음 역시 인간의 노력과 예수님의 자비가 만납니다. 곧 병아리가 달걀 껍질 안에서 껍질 바깥을 향해 쪼고, 동시에 어미닭이 달걀을 품으며 그 껍질을 쪼아 줄탁동시를 이루는 것과도 같습니다. 예리고는 줄탁동시의 장소입니다. (여호수아서에서도 예리고 점령은 줄탁동시로 이루어집니다).

 

다음 문제...

 

2. 다음은 누구입니까?

나는 키가 작습니다.

나는 돈이 많은 세관장입니다.

나는 나의 동포의 돈을 로마 제국의 이름으로 갈취하던 사람입니다.

① 착해요 ② 잘까요 ③ 자캐오 ④ 작아요

 

자캐오는 키가 작은 사람입니다. 열등감이 넘칩니다. 그는 그런 열등감과 상처를 돈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돈이 많으면 아무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기가 두려워 먼저 상처를 주며 돈을 벌었던 사람입니다. 돈의 힘을 알고 있고 그것으로 살았던 키작은 세관장이었습니다. 그는 동포 사이에 더 이상 어울릴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상처를 많이 줍니다. 열등감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것을 이겨나가기 위해 다른 방향의 죄를 짓습니다. 권력을 쫓고, 돈을 쫓고, 명예를 쫓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열등감을 숨깁니다. 우리는 또다른 자캐오입니다.

 

3. 자캐오는 키가 작아서 군중들에 가리워서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① 군중들을 다 때려 눕혔다

② 무등을 타서 예수님을 보았다.

③ 군중들의 다리 사이를 휙휙 지나가며 예수님에게 가까이 갔다.

④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 나무 위에 올라갔다.

 

돌무화과 나무 위로 올라가는 자캐오... 여기서 돌무화과 나무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냥 무화과 열매는 고급스러운 열매입니다. 그것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먹는 과일입니다. 반면 돌무화과 열매는 일반 서민들이 먹는 과일이라고 합니다. 곧 자캐오가 돌무화과 나무 위로 올라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오르는 그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도 다른 사람을 짓밟아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행복을 그런 식으로 찾아왔습니다.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야만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4.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① 자캐오야, 원숭이도 나무 위에서 떨어진다더라. 조심하거라.

②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③ 자캐오야, 나무를 참 잘 타는구나. 대단하다.

④ 자캐오야, 너는 돈도 많은 사람인데 왜 그리 수고하느냐? 그냥 그 돈으로 사람들에게 돈 줘서 전부 집에 보내고 나를 만나면 되지 않겠니?

 

예수님은 자캐오에게 그런 치열한 방식, 경쟁적인 방식, 다른 사람을 부수는 방식을 포기하길 원하십니다. 허황된 꼭대기에는 아무 것도 없으며 단지 자신을 낮추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자캐오에게 이제는 내려오라고, 힘을 빼라고 합니다. 사람이 자신을 낮추고 힘을 빼면 예수님께서 그때에 알아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반면 사람이 자꾸 오르고, 또 오르면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이게 신앙의 진리입니다.

 

자캐오는 열등감에 사로잡혔던 사람이지만, 남을 짓밟고 돈을 착취하면서 우월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무에서 내려옴으로써 참된 겸손에 이르게 됩니다. 열등감에서 우월감으로, 그리고 참된 겸손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열등감과 겸손은 이토록 다른 것입니다.

 

5. 죄인 자캐오의 집에 예수님이 들어가셨습니다. 자캐오는 예수님께 뭐라고 말하였습니까?

①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을 갚아 주겠습니다.

② 주님, 저는 제 재산의 삼분의 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그 다섯 갑절을 갚아 주겠습니다.

③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그 다섯 갑절을 갚아 주겠습니다.

④ 주님, 저는 제 재산의 삼분의 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을 갚아 주겠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요한 복음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있다가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하느님의 어린 양이 저기 가신다”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두 제자는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때 제자들이 “라삐,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셨고, 예수님은 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릅니다. 그저 예수님을 따라갔고 그분과 함께 있었을 뿐이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인 안드레아는 자기 형제인 시몬에게 찾아가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하고 대답합니다.

 

자캐오는 일부러 좋은 일을 하겠다고 억지 결심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죄책감을 이기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녕 그는 예수님을 제대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제대로 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 재산의 절반을 내어 놓고, 자기가 부당하게 착취한 것의 네배를 갚겠다고 한 것은 절로 우러 나온 것입니다. 선행은 이렇게, 절로 우러나오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예수님과 함께 할 때에 가능하게 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5, 5)

 

마지막 문제

6. 예수님은 회개한 자캐오에게 “이 집은 무엇을 얻었다”고 말씀하십니까?

① 칠원 ② 팔원 ③ 구원 ④ 십원

 

전혀 구원받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자캐오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자기가 정말 못났다고 생각하는 키작은 자캐오, 사람들의 시선에 항상 불안한 자캐오, 그래서 사람들에게 힘을 부리고 권력을 부리고 돈을 착취하던 자캐오, 상처를 받은 것 이상으로 상처를 주고, 열등감을 받은 것 이상으로 허세를 부리던 자캐오라는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라고 못받겠습니까? 못받겠다면 왜 못받습니까? 아직 준비가 되질 않아서? 구원받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내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나 부족하고 죄가 많아서? 하느님마저도 그렇게 못나게 보실 것만 같아서?

 

힘을 빼십시오. 주님을 만나겠다는 열망 하나로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려오십시오. 자신을 낮추십시오. 구원을 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가 가진 자리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낮추인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내가 아빠인데, 네가 나를 무시해? 단장인 내가 하는 말이니깐 그냥 따라와! 회장인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하겠어? 하면서 그 자리를 고집하지 마십시오. 섬기는 자세로, 낮추인 자세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자연스럽게 여러분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출처 : 빈들
글쓴이 : 루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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